웃긴대학 원글보기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일본 사람이고,
아빠는 한국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엄마와는 일본어로 이야기했고,
아빠와는 한국어로 이야기했습니다.
영어유치원과 국제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어요.
그래서 열 살 무렵의 쵸로미는
적어도 언어 때문에
어딘가에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일본에 간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これから日本で暮らすの。」
(이제 일본에서 살 거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쵸로미는 꽤 신났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고향이기도 했고,
방학 때마다 몇 번씩 갔던 곳이었고,
무엇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에서
엄마와 함께 지낸다는 게
어린 제게는 조금 긴 여행처럼 느껴졌어요.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것도
무섭다기보다는 궁금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日本の学校、行ってみたい?」
(일본 학교, 가보고 싶어?)
쵸로미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응!"
아마 부모님은
그 대답을 듣고 조금 안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열 살짜리 아이에게는 꽤 큰 변화였는데,
당시의 쵸로미는 그게 얼마나 큰 결정인지
전혀 몰랐거든요.
그냥
일본에 가고,
새 학교에 다니고,
외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그러다 방학이 되면
다시 한국에 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출국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빠 짐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쵸로미가 물었습니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요.
“아빠는 한국에 있지.”
“왜?”
“일해야 하니까.”
“나중에 와?”
“응. 자주 갈게.”
그때는 정말
그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아빠는 회사가 있으니까 한국에 남고,
엄마와 쵸로미는 일본에 가는 것.
아빠는 조금 늦게 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마 쵸로미는 공항에서도 별로 울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 들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아빠가 서 있었습니다.
쵸로미가 손을 흔들자
아빠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빠, 금방 와!”
쵸로미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아빠도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때의 쵸로미는 몰랐습니다.
엄마와 쵸로미가 일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동안,
아빠에게도 전혀 다른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요.
집에 돌아와도 엄마가 없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어대는 딸도 없고,
세 사람이 먹던 저녁을 혼자 먹어야 했을 겁니다.
쵸로미는 나중에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근데 왜 나를 일본에 보냈어?”
처음에는 단순히
엄마가 일본 사람이니까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일본어도 배우고,
일본 문화도 경험하고,
외가와도 가까워지고.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겠죠.
그런데 아빠의 대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네가 한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너무 일찍부터 입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싫었어.”
“일본은 공부 안 해?”
“그런 뜻은 아니지.”
아빠가 웃었습니다.
“공부는 어디서든 해야지.”
“그럼?”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공부 말고도 해볼 게 많잖아.”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것도 찾아보고,
실패도 해보고.
아빠는 쵸로미가 그런 시간을
조금 더 많이 가졌으면 했다고 합니다.
“대학 하나 때문에
십 대를 다 쓰는 건 아깝잖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원래
공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세계 어딜 가도 인정받는 학력을 가진 분이고요.
책도 많이 읽으라고 했고,
언어 공부는 매일 해야 한다고 했고,
무엇이든 시작했으면
꾸준히 하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성적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쵸로미가 어떻게 십 대를 보내는가에 대해서는
성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따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나중에 돌아보면
아빠가 쵸로미에게 바라던 건
아마 그런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아빠도 하나를 포기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
쵸로미는 처음 엄마가 한국에 왔던 일을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익숙한 말과 음식도
모두 일본에 두고
아빠를 따라 한국에 왔던 엄마.
쵸로미는 늘 그것을
엄마가 했던 아주 큰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엄마와 딸을 일본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아빠에게는
아내와 딸이 다른 나라로 떠난 것이었습니다.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비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한 번씩
다른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며 살았던 것 같아요.
엄마가 아빠를 위해 한국으로 왔고,
몇 년 뒤에는
아빠가 쵸로미를 위해 일본으로 보내주고.
그런데 열 살의 쵸로미는
그런 건 하나도 몰랐습니다.
쵸로미가 알고 있던 건
딱 하나였습니다.
새 가방을 메고,
새 신발을 신고,
처음 가보는 일본 초등학교 교문 앞에
엄마와 함께 서 있었다는 것.
엄마가 제 옷깃을 한번 정리해주고 말했습니다.
「大丈夫そう?」
(괜찮겠어?)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어도 할 수 있었고,
엄마도 있었고,
무엇보다 쵸로미는
"아빠 딸이니까"
그런데 막상 교실 문이 열리고,
수십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쵸로미를 바라보는 순간,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과
일본에서 살아본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제가 알고 있던 일본과,
직접 살아가게 될 일본이
많이 다르다는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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