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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미 | 26/10/16 21:54 | 추천 0 | 조회 179

열 살의 봄, 저는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 1 +11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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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
엄마는 일본 사람이고,
아빠는 한국 사람입니다.
​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엄마와는 일본어로 이야기했고,
아빠와는 한국어로 이야기했습니다.
​
영어유치원과 국제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어요.
​
그래서 열 살 무렵의 쵸로미는
적어도 언어 때문에
어딘가에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
엄마가 일본에 간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
「これから日本で暮らすの。」
(이제 일본에서 살 거야.)
​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쵸로미는 꽤 신났던 것 같습니다.
​
엄마의 고향이기도 했고,
방학 때마다 몇 번씩 갔던 곳이었고,
​
무엇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에서
엄마와 함께 지낸다는 게
어린 제게는 조금 긴 여행처럼 느껴졌어요.
​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것도
무섭다기보다는 궁금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
엄마가 물었습니다.
​
「日本の学校、行ってみたい?」
(일본 학교, 가보고 싶어?)
​
쵸로미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
"응!"
​
아마 부모님은
그 대답을 듣고 조금 안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열 살짜리 아이에게는 꽤 큰 변화였는데,
​
당시의 쵸로미는 그게 얼마나 큰 결정인지
전혀 몰랐거든요.
​
그냥
​
일본에 가고,
새 학교에 다니고,
외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
그러다 방학이 되면
다시 한국에 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
그런데 출국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
아빠 짐이 없었습니다.
​
“아빠는?”
​
쵸로미가 물었습니다.
​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요.
​
“아빠는 한국에 있지.”
​
“왜?”
​
“일해야 하니까.”
​
“나중에 와?”
​
“응. 자주 갈게.”
​
그때는 정말
그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
아빠는 회사가 있으니까 한국에 남고,
엄마와 쵸로미는 일본에 가는 것.
아빠는 조금 늦게 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
아마 쵸로미는 공항에서도 별로 울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 들떠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엄마 손을 잡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
아빠가 서 있었습니다.
​
쵸로미가 손을 흔들자
아빠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
“아빠, 금방 와!”
​
쵸로미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
아빠도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
“그래.”
​
​
그때의 쵸로미는 몰랐습니다.
​
엄마와 쵸로미가 일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동안,
​
아빠에게도 전혀 다른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요.
​
집에 돌아와도 엄마가 없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어대는 딸도 없고,
세 사람이 먹던 저녁을 혼자 먹어야 했을 겁니다.
​
쵸로미는 나중에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
“근데 왜 나를 일본에 보냈어?”
​
처음에는 단순히
엄마가 일본 사람이니까 그런 줄 알았습니다.
​
일본어도 배우고,
일본 문화도 경험하고,
외가와도 가까워지고.
​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겠죠.
​
그런데 아빠의 대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
“네가 한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너무 일찍부터 입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싫었어.”
​
“일본은 공부 안 해?”
​
“그런 뜻은 아니지.”
​
아빠가 웃었습니다.
​
“공부는 어디서든 해야지.”
​
“그럼?”
​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공부 말고도 해볼 게 많잖아.”
​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것도 찾아보고,
실패도 해보고.
​
아빠는 쵸로미가 그런 시간을
조금 더 많이 가졌으면 했다고 합니다.
​
“대학 하나 때문에
십 대를 다 쓰는 건 아깝잖아.”
​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아빠는 원래
공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세계 어딜 가도 인정받는 학력을 가진 분이고요.
​
책도 많이 읽으라고 했고,
언어 공부는 매일 해야 한다고 했고,
​
무엇이든 시작했으면
꾸준히 하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
그래서 저는 당연히
성적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
그런데 정작
쵸로미가 어떻게 십 대를 보내는가에 대해서는
​
성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따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
나중에 돌아보면
아빠가 쵸로미에게 바라던 건
아마 그런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아빠도 하나를 포기했습니다.
​
가족과 함께 사는 것.
​
쵸로미는 처음 엄마가 한국에 왔던 일을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
가족도,
친구도,
익숙한 말과 음식도
​
모두 일본에 두고
아빠를 따라 한국에 왔던 엄마.
​
쵸로미는 늘 그것을
엄마가 했던 아주 큰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얼마 뒤에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
이번에는 아빠가
엄마와 딸을 일본으로 보내주었습니다.
​
엄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
아빠에게는
아내와 딸이 다른 나라로 떠난 것이었습니다.
​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비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
우리 가족은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한 번씩
다른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며 살았던 것 같아요.
​
엄마가 아빠를 위해 한국으로 왔고,
​
몇 년 뒤에는
아빠가 쵸로미를 위해 일본으로 보내주고.
​
그런데 열 살의 쵸로미는
그런 건 하나도 몰랐습니다.
​
쵸로미가 알고 있던 건
딱 하나였습니다.
​
새 가방을 메고,
새 신발을 신고,
​
처음 가보는 일본 초등학교 교문 앞에
엄마와 함께 서 있었다는 것.
​
엄마가 제 옷깃을 한번 정리해주고 말했습니다.
​
「大丈夫そう?」
(괜찮겠어?)
​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괜찮아."
​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
일본어도 할 수 있었고,
엄마도 있었고,
​
무엇보다 쵸로미는
​
"아빠 딸이니까"
​
그런데 막상 교실 문이 열리고,
​
수십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쵸로미를 바라보는 순간,
​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과
일본에서 살아본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
그날부터
​
제가 알고 있던 일본과,
직접 살아가게 될 일본이
​
많이 다르다는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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