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걷다보니 무진복과 안전모를 들고가던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렸음.
옆을 보니 타이슨이 꾿꾿하게 한손으로 들고 가는게 보임.
대륙에 질수없지..
다시 힘을 내어 악바리처럼 버티며 결국 건물 안으로 들어감.
와우..건물 내부는 직원들 휴게실 및 카페테리아 였는데 과거 한화 공장에 갔을 때 처럼 인테리어도 멋지고 먹을것은 다양했음. 많은 중국 공장을 다녔지만 여기가 넘버 원일듯.
이래서 대기업을 다녀야 하는건가..
계단 입구에 백이사와 양이사, 성차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합류 후 2층으로 올라가니 익숙한 신발장이 보였음.
[음.. 슬슬 발꼬랑내 준비 해야겠구만]
하지만 신발장을 들어가도 냄새가 나지 않았음. 내가 알던 중국이 아니구나 이제..!!
신발장 앞에 가서야 무진복과 안전모를 내려 놓을 수 있었음. 타이슨의 오른 팔을 보았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음]
"야 타이슨."
"??"
"힘드냐?"
"?"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ㅋㅋㅋㅋ팽이버섯 너 신경쓰고있었냐?"
"어 ㅋㅋㅋㅋㅋ 이 새퀴야 ㅋㅋㅋㅋㅋ"
백이사가 풀린 눈으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뭐꼬? 둘이 첫눈에 반했나? 잘노네?"
"..........."
"뭐라고 한거야?"
"못들은 걸로 하자..."
"......?"
비닐을 열고 안을 봤더니 안에는 백이사, 양이사 무진복/안전화가 들어있었음.
타이슨의 비닐에는 성차장, 꾀돌이 이사 몫...
[와...어쩐지 개 무겁더라니....너무하네 진짜...]
이걸 타이슨 녀석이 혼자 다 들고 20분을 걸어와 입구에서 우릴 맞이했다는게....
[졌다..! 녀석의 오른팔은 이미 한계였다...공정하지 못한 경기였어...ㅠ]
여느 공장과 같이 옷장이 진열되어 있었고, 박과장은 옷장에 걸린 자기 무진복을 챙겨입기 시작했음. 우리는 뭐 그냥 주섬주섬 무진복을 입는데
"아. 다들 혁대는 빼야 됩니다."
"아이씨...귀찮게..."
다들 벨트를 풀고, 나는 전자담배를 꺼내고..
"여기는 핸드폰도 안됩니다. 여권도 안됩니다. 걍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어야 됩니다."
[걍 첨부터 아무것도 못들고 간다 하면 되잖아 ㅠ]
막상 물건들을 다 꺼내 놨더니 사람들이 그냥 옷장 밑 바닥에 물건들을 모으는게 보였음.
"엥? 보관함 같은거 없어요?"
꾀돌이 이사가
"여기는 그냥 이래 모아놔도 됩니다^^"
"누가 훔쳐가면요? 여권도 여기 다 있는데."
"안훔쳐가요~"
"어?? 말이 안되는데? 얘네 시민의식이 그렇게나 올라갔어요??"
백이사가 말했다.
"소장님~요즘 마이 쉬셨는갑네~ 중국 오랫만에 옵니까?"
"....오랫만이긴 하지요. 거의 4~5년 만이죠.."
"그라문 설마 공항에서 인민폐 환전해 왔능교?"
"네.....ㅡ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왜요? 같이 좀 웃지요? ㅋㅋㅋ"
"크흡. 요즘은예~ 중국에서는 현금은 취급 안해줍니더~"
"넹!? 그럼 뭘로..."
"웨이신~ 즈푸바오~ 그거 없으면 중국에서는 밥도 못사묵어"
"암암! 잔돈 없다고 돈도 안받아!!"
"어...? 그것들 연동해서 충전하고 할라면 중국 은행에서 직접 계좌 파야 될텐데요?"
[님들 수쥰에?]
"여기 중국 계좌 없느나람 있드나~?"
"다 있지요!"
[귀엽노?]
나도 웃었음.
"푸흡! 저는 이미 28살때 중국계좌 뚫어놨지요. 10년도 전에. 드디어 슨배님들 계좌 만드셨나부네~~"
"............"
"..........."
"제가 이겼죠? ㅋㅋㅋ"
"드갑시다 일하러."
"아. 그런데 성차장님."
"네 소장님"
"노트북에 주신 코드들 실행파일들 다 만들어서 가지고 왔거든요. 오늘은 무릴거 같고, 내일 천O 출발전에 한번 더 들어오지 않습니까?"
"네."
"마지막 하루인데, 설비에 테스트는 해야죠? 될만한거 다 때려박아 넣어 봐야죠."
"음.....;;;"
"우리 그거 하러 온거 아녔어요??"
"아...그러시면 퇴근후에 명현이(타이슨) 한테 USB로 담아 주세요. 내일 준비할 수 있게.."
"아아!! 넵!!!"
"오늘은 설비 한번 보시고 고객사 얘기들으면서 문제점 파악해 보시죠~"
"네. 그럼 성차장님이 도와 주실거죠?"
"아...;; 저는 다시 공장장 미팅을 가야해서...;; 소장님 혼자서도 다 하실거 같던데.."
"...저는 전공이 아니잖아요 차장님...;;"
"아뇨. 제가 보니까 저랑 비슷하신거 같아요."(영혼없음)
[당신이 통역으로 온거 아녔어!? 진짜 내 중국어 하나 믿고 왔다고!?]
".......일단...알겠습니다..최대한 알아보겠지만..책임은 못집니다. 저라고 100% 중국어를 하는게 아니에요."
"최종 정리는 저희 K테크가 하니까요. 부담갖지 마세요. ㅎㅎ"
[책임 지라고 해도 안진다 ㅡㅡ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노!?]
....................
여권과, 핸드폰을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에 놓아두고 공장에 들어가는게 도무지 적응이 안되었음. 개발자가 현지에서 노트북을 들고있지 않은것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여권과 핸드폰을 저렇게 방치!? 없어지면. 그러다 없어지면!!!!!??
물론 나는 맨몸으로 중국 어디로 떨어지더라도 한국까지 무사히 살아 돌아갈 자신은 있음.
그래도 뭐랄까...정신이 없어서 허둥지둥 거렸음.
그냥 앞에 걷는 이사님들 뒤통수만 보며 공장안을 걸었음.
내가 지금 에어샤워를 하고 있는지...계단을 몇층이나 오르내리고 있는지...
그저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집에있는 아이와 와이프가 걱정될 뿐..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대한 생산라인 앞에 있었음. 꾀돌이 이사님이 나를 데리고 설비를 보여주었음.
"이게 AOI 입니다~"
"오.. 실제로 도는거 보니 UI가 멋지네요."
[사실상 구리다...WPF 라는 자유로운 초식을 가지고...Winform의 틀을 못 벗어 났구나..Widget의 개념은 하나도 없다. 뭐 저리 오밀조밀 Grid안에 값들을 때려 모아 놨을꼬...]
"그렇죠. UI 전문가인 이과장님이 짜신거니까. ㅎㅎ 예전 소장님 하실때랑은 많이 다르지요? ㅎㅎ"
"네...ㅎㅎㅎ 그럼 일단 설비 동작이나 설명을 좀 들어봐야 겠는데.."
그때 박과장이 호다닥 달려오더니 꾀돌이 이사를 불렀음.
"이사님! 저기 #6라인에 같이 좀 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얼라인이 자꾸 나간다는데..가압쪽이 문제인지...#$!$!!%$!3"
"아 그래? 음..소장님 저 잠깐만 갔다올께요. 있다가 명현이 오면 명현이한테 좀. 물어봐봐요..! 걔가 나보다 더 잘알아!!"
"넹"
호다닥 달려가는 꾀돌이 이사를 보니 몇년만에 사람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설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작화내에 수치를 확인하고, 노트에 계산을 해가며 고민하고 있는 저 모습이 보기가 좋았음.
설령 내 AOI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서도..ㅋㅋㅋ
라인에 들어와서 설비를 바라볼때 마치 고향에 돌아온듯한 반짝이는 눈빛.
이사님의 K테크 퇴사후...
내가 알던 그...
본딩기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설비를 누구보다 많이 이해하고 잘 다루던 똑똑한 엔지니어는 몇년동안 십장 사무실에서 용역 인원들 수급, 배치하는 일만 하며 정치적으로 변해갔고 눈치를 보며 썩어들어 갔음.
나이는 들어가고, 이제는 다른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자신감도 사라져가는 시점에..과연 이 길이 맞는걸까? 도저히 적성에 안맞는데..하면서도 그만두기에는 깊이 발을 들여버린 시점.
어떻게 보면 이사님은 평생 쌓아왔으나 순간의 판단 착오로 묻어두어야만 했던 엔지니어링을 다시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저런 모습을 본다면 다시 그를 현업으로 돌려보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살다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음. 혼자 활활 타오르면서 주변을 시들게 만드는 사람.
나는 그게 우리 대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음.
저렇게 현장에서 신이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와서 찾아주고. 실시간으로 인정을 받으며 머리를 싸매고 함께 고민하고 있는 이사님을 과연 대표는 알까?
목표도 없고 허황된 욕망을 쫓으며 관계와 위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사람을 가스라이팅하며 사람의 가능성을 시들게 만드는 사람. 이사님의 그 가능성이 여전히 빛나 보이기에 보는 내가 아쉬운 마음이었음.
주변 사람을 장작 삼아 혼자 활활 타면서 주변을 시들게 만드는 사람은 결국 '실력'없이 화려한 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임. '실력'이 있다면 주변도 함께 빛나게 해주는것.
결국 이 바닥은 '실력'이 최고의 연료임. 실력이 받쳐준다면 남을 장작삼아 타오르려는 자들까지도 삼켜 버릴 수 있음. 조만간 내 거취도 그에맞게 움직여야 겠다 생각하며 상념을 접었음.
...........
검사기가 뭐 별거 있나.. 예전 같았으면 파라미터는 어떤게 있는지..세팅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머리아프게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겠지.
일단 검사기가 '검사'는 잘 하는가? 사실 그게 핵심임.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음.
힐끗 보니 마스크를 쓴 타이슨이 보였음.
[메인터넌스 수준 파악 좀 해볼까?]
"야 타이슨."
"?"
"너 AOI 좀 아냐?"
"잘은...모르지만...쬐끔?"
"너 검사 세팅 할 줄 알아?"
"알지. 이것도 내가 세팅 한건데."
"오? 쉽지 않았을 텐데?"
"뭐...시키면 해야지 별수있나..."
"역시 넌 멋진 놈이야. 보통은 니꺼 내꺼 가리면서 일하거든 이 바닥이. 나도 이제는 프로그램좀 한다고 까불면서 내 분야 아니면 손 안댈려고 한단 말이지.."
"뭐 나야....아직 기술이 미천하니까...골고루라도 해야지..근데..너 프로그래머야?"
"몰랐냐?? ㅋㅋ 그럼 넌 내가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하냐!? 통역? ㅋㅋㅋㅋ"
"아아...!? 너 한국인이야?? 한국 프로그래머인데 중국어를 이렇게 한다고!?"
"이쉐이킷. 뭔 소리야? ㅋㅋ 바보냐 너? ㅋㅋㅋ 됐고! 들어보니까 이거 안되는게 꽤 있다고 하던데 혹시 알고있냐?"
"어 알지!!! 말해 줄까?"
"오? 자세 좋은데? 부탁좀 하자. 내가 파악해야 할게 많아."
[아아...! 성차장...이런 인재를 준비해 두었구나..!]
"자 봐봐!! 이거 흰색이 IC고 요거 검정색이 FPC야. 우리는 이 IC와 FPC의 틀어진 간격을 보고 검사를 하는거지!"
"엥? 원래 AOI라는건 드래곤볼 개수와 치우침을 검사하는거 아냐?"
"그것 옛날의 검사 방식이지.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드래곤볼이 덜 터지거나 하는건 없어."
"오~그렇군! 그래서 화면 분해능이 이렇게 작아 보이는구나? 더이상 드래곤볼을 상세히 볼 필요 없으니까!"
"그렇지! 근데 분해능이 뭐야?"
[그래. 이렇게 기브앤 테이크 하며 함께 알아가는거지!]
"아 분해능이란건..."
.............
..........
........
"오! 확실히 프로그래머랑 직접 얘기하니까 궁금한게 다 풀리네!"
"나도 뭔가 확 와닿네. 니 말을 듣다보니 좀 궁금한게 있어."
"뭐?"
"너는 지금 ROI를 IC 내부에 작게 설정을 해뒀잖아? 내가 볼 때, 저 ROI 상단, 하단에서 각각 픽셀 추적을 역방향으로 하면서 내부의 Edge를 찾는 방식이란 말이지?"
"응."
"Edge를 찾으려면 ROI를 Y 방향으로 길게 설정해서 IC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설정해야 정상 동작을 해. 그런데 너는 IC 영역 내부에 검사영역을 설정했으니..이대로면 어떤 검사를 하더라도 양품이 나올 수 밖에 없어. 왜그런거야?"
"그거야 검사가 안되니까 그렇지."
"그럼 알면서 그랬다고? 그러면 나한테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알겠어. 잠깐만.."
타이슨 녀석이 갑자기 설비를 세웠음. 이쉐이킷 큰일 날 짓을 하네!?
"어..어...!! 야 괜찮아? 설비를 세워도?"
"어 괜춘"
[이새끼 일은 잘하는데 개념을 밥말아먹었구만..하지만 속도는 빠르네?]
녀석의 손은 정말 빨랐음. 순식간에 내가 원하는 세팅을 하고 다시 가동버튼을 눌렀음.
그 결과는 마법과도 같았음. 검사율 100%라고 할까?
이 미친 성능의 검사기는 양품 불량 가리지 않고 모두 불량으로 배출하기 시작했음.
그리고 라인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
뻬에에에엑~~뻬에에에엑~뻬에에에엑...
"오...오케이!! 스톱스톱!! 완벽히 알아들었어!!"
"봤지? 다시 원복 한다?"
"어어...부탁한다."
그렇게 진땀을 빼고 슬쩍 눈치를 보는데, 녀석이 말했음.
"야. 계속 여기 있을거지?"
"어. 왜?"
"나 잠깐 보고좀 하고 와야해서."
"어 갔다와~"
.............
...........
........
그렇게 녀석을 기다리는데 박과장이 나를 찾아왔음.
"저...소장님?"
"네?"
"조...죄...죄송하지만.. 통역 좀..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아..네. 가시죠."
박과장을 따라간 곳에는 타이슨 녀석이 노트북을 들고 랜선을 장비에 꽂아넣고 있었음.
"야. 타이슨."
"??"
"너 뭐 보고..하러...어..옷...옷이 다..다르네?"
[방금전의 타이슨은 밝은 하늘색의 옷이었는데..지금의 타이슨은 진한 파란색 옷이다..]
"????"
"너 PLC 엔지니어냐?"
"어.ㅋ 너도 프로그래머. 나도 프로그래머!"
"............"
[그럼 방금 나랑 대화하던 놈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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