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십자군 종교 기사단의 근황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대표적인 세 개 종교 기사단, 기사수도회일 것이다.
성전 기사단
![자유 게시판] 워부의 실제모델 몰타구호 기사단 | 검은사막 한국](https://s1.pearlcdn.com/KR/Upload/Community/5b8e31256f020190620142056186.gif)
구호 기사단
튜턴 기사단이다.
이들 종교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기 내내 레반트 지역과 지중해,
그리고 서유럽 전역에 지부를 두고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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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은 제 9차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난 직후
1291년 아크레가 맘루크 술탄국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면서
완전히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그 이후 이들 종교 기사단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전 기사단 → 그리스도 기사단
중근동 최후의 거점 아크레를 잃은 이후에도 서유럽 각지에서 성전 기사단이 주장하던 십자군의 필요는
당장 서유럽의 정치적 일변도가 급선무인 왕국들에게는 이미 하순위로 밀려난 뒤였다.
이 당시 기사단 총장 자크 드 몰레는 레반트 지역의 십자군 구상에 더해
구호 기사단과의 합병까지 진지하게 논의했던 것으로 보이나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에게 아비뇽 유수를 처맞은 교황에 의해
남색, 악마 숭배죄 등의로 고문받은 뒤 1312년 빈 공의회에서 해체되고
1314년 총장 자크 드 몰레는 화형당한다.
(교황은 이들이 무죄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단 전체가 탄압을 받았던 건 아니다.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국가의 지부들에는 탄압이 없었기 때문에
기사단 이름을 바꿔 명맥을 보존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지금도 존재하는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1312년에 포르투갈 지부는 국왕 디니스 1세의 중재를 받아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변경 후
대항해 시대까지 명맥을 잇는다.
현재는 포르투갈 대통령이 기사단장 직위를 맡으며,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형태로 가입된 기사단원들이 존재한다.

구호 기사단 → 로도스 기사단 → 몰타 기사단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된 직후 이들 구호 기사단은 키프로스로 밀려났으며
당시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로도스 섬을 침공해(???) 거점으로 삼았다.
십자군 전쟁이 종료된 이후 성전 기사단은 탄압받아 사라졌으나
구호 기사단은 레반트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세력 최후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었던 탓에
성전 기사단 사후 그 유산을 흡수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16세기, 화포가 등장하고 전쟁의 기술적 판도가 점차 변화하던 시대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삼중 성벽이 화포에 무너지는 걸 보고
이슬람 세력의 침공에 대비해 성채를 증축했으며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1차 공략엔 버텼지만
40년 뒤 인해전술을 시전한 쉴레이만 1세에게는 못 버티고 크레타 섬으로 밀려났다.
이후 한동안 시칠리아에서 살던 기사단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에게
몰타 섬을 받아 그곳을 거점으로 사용하게 되며,
18세기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대륙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서유럽에 있던 지부들이 사라지고 몰타 기사단은 일종의 독립국가로 남았고
그마저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몰타 기사단은 당시 교황 비오 7세의 도움을 받아 시칠리아에서
다시 명맥을 이을 수 있었고, 근대에 들어 1834년 로마에 지부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처음 기사단의 본분이었던 NGO 구호 단체로 거듭난다.
예전의 무장 단체 성격은 사라졌지만 현재는 19세기 이탈리아 국왕과의 협약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육군 산하의 독립 편제군으로도 남아있다.
현재는 대한민국에도 지부가 존재하며, 한국 지부의 단원은 15명이다.
...
여담으로, 16세기 당시 화포의 등장으로 전쟁의 판도가
더이상 검과 창의 시대가 아닌 총과 화약의 시대로 변모하던 시기에
로도스 기사단의 기사들은 무구들을 워낙 잘 다뤘다고 한다. 총까지.
그러니까 만약 이들이 군사 단체로서의 존재를 조금 더 오래 유지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진짜로 총 쏘는 기사를 기록으로나마 봤을 수도 있다.

튜턴 기사단 → 독일 기사단국 → 독일 수도 기사단
기사단원이 독일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일 기사단으로도 불린다.
1190년 아크레 공성전을 계기로 설립된 야전병원이 모체이며,
1192년 교황에게 인가받아 구호집단으로 활약하다 1198년 군사단체로 전환하였다.
초기에는 성지 예루살렘과 그 근방에서 활동하였으나, 1211년 헝가리 국왕의 권유를 받고
트란실바니아로 이주, 거기서 독립하려다 국왕의 분노를 사 쫓겨난 뒤
프로이센 지역에서 그 지역 원주민에 대한 북방 십자군을 일으켜 독일 기사단국을 세웠다.
독일 기사단국은 1410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을 상대로 대패하고
1454년부터 1466년까지 폴란드와 전쟁을 벌였다가 영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기사단장이 폴란드 왕의 신하가 되면서 가톨릭 교황과 계보가 단절되었다.
그 후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신성 로마 제국이 사라지면서
기사단 조직도 보유하던 영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멸망했으나
1834년 오스트리아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원으로
기사단 조직이 다시 살아나면서 현재 독일 수도 기사단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는 빈을 거점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구호 단체 성격으로 변모되었다.
이렇듯 과거 십자군 전쟁을 이끌었던 종교 기사단은
초기 성전 기사단이 '예루살렘의 순례자 보호'라는 명목에서 설립되었듯이
구호와 봉사라는 본분으로 돌아간 점이 아이러니하다.
몰타 기사단의 홈페이지에 적힌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더 이상 검으로 싸우는 전쟁은 없으나, 평화로운 도구들을 사용해
질병, 가난, 사회적 단절, 편견과 싸워 나가는 것은
믿음을 지키고 전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십자군에서 구호단체로 성격이 바뀌기까지 우여곡절이 엄청 많았네
저쪽이나 이쪽이나 다다른 결론은 같네
사람이 아닌 무지와 가난, 극단주의를 적으로 삼은 것
유로파 시리즈를 하다보면 구호기사단이 신나게 해적질을 하고다니는 걸 감상할 수 있다(...).
공중 구호 기사단은 없는거였어?!
헬싱이 또 나를 속였어
아 몰타 기사단에 항공 전력은 예전에 잇었음. 프로펠러기를 수송기로 쓰다가 현재는 박물관에 전시 중이고 그 외에 총 든 기사단은... 맞긴 함.
살라흐 앗 딘이 다른 기사는 포로로 잡았지만
성전, 구호 기사단은 왜 처형했을까.
당시 리처드 1세가 무슬림 포로 2,700여 명을 처형한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하고 하더라고.
기사의 마지막이 킹덤오브헤븐의 기사도문의 마지막처럼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를 행하지 말라. 그것이 네 소명이다'로 이어지는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