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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aza | 26/06/13 01:55 | 추천 19 | 조회 29

[유머] 영화) 왜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의 호평이 불편한 지점이 있는가 +2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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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왜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의 호평이 불편한 지점이 있는가


영화) 왜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의 호평이 불편한 지점이 있는가_1.webp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의 호평은 작품 자체의 성취만을 칭찬한다기보다,

최근 각색작들에 대한 피로가 만들어낸 반작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실사판은 몇몇 장면에서 관계와 액션을 확장했지만, 기본적으로 원작의 서사, 대사, 음악, 장면 배열을 매우 충실하게 재현했다.

딘 데블로이스 감독도 일부 상징적 장면은 거의 쇼트 단위로 원작을 따랐다고 밝혔고,

실제 비평에서도 “비트 단위, 쇼트 단위, 대사 단위의 복제”라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관객 반응은 비평가보다 훨씬 열광적이었다.

개봉 당시 로튼토마토 관객 평점은 98% 수준까지 올라갔고, “원작의 영혼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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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응이 생긴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관객들은 오랫동안 “현대화를 위해”, “새로운 관점을 위해”, “오늘날의 관객에게 맞추기 위해”라는 명분 아래

원작의 성격을 바꾸는 리메이크를 많이 보았다.

캐릭터의 결함이 제거되고, 관계의 긴장이 순화되며, 원작의 장면보다 각색자의 메시지가 앞서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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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원작 감독이 직접 돌아와 유명한 음악과 장면을 훼손하지 않고 재현하자,

관객은 그것을 단순한 보수성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으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내가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고치려 들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이다.

데블로이스 자신도 많은 실사 리메이크가 불필요하다고 보면서,

자신의 작품은 팬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원작의 정신을 보존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을 곧바로 각색의 정답이라고 부르면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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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은 원작을 다른 매체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매체가 달라지면 같은 장면도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애니메이션의 얼굴, 움직임, 과장, 공간은 실사에서 그대로 구현될 수 없다.

애니메이션의 히컵은 선 몇 개와 목소리만으로도 연약함과 익살을 동시에 표현하지만,

실제 배우에게 같은 동작과 억양을 요구하면 모방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투슬리스는 그래픽적으로 단순화된 얼굴 때문에 작은 눈동자 움직임이 크게 읽히지만,

사실적인 질감과 무게를 부여한 실사형 생물에게 같은 표정을 복제하면 귀여움을 계산한 퍼포먼스가 된다.

같은 음악이 같은 시점에 흐르고, 같은 대사가 같은 구도에서 반복되어도 그것은 자동으로 같은 감동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충실한 각색의 진짜 기준은 “얼마나 많은 장면을 그대로 옮겼는가”가 아니라,

원작에서 그 장면이 수행했던 기능을 새로운 매체에서 얼마나 새롭게 실현했는가다.




예컨대 원작의 비행 장면이 애니메이션 카메라의 자유, 존 파월의 음악, 캐릭터의 과장된 몸짓을 통해 해방감을 만들었다면,

실사판은 실제 자연광과 공기, 배우의 물리적 공포, 드래곤의 무게를 이용해 다른 종류의 해방감을 만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주더라도 그 감정을 생산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원작의 구도와 음악적 타이밍까지 되풀이하면 실사판은 스스로의 영화적 해답을 찾기보다,

이미 성공한 해답을 더 비싼 재료로 다시 수행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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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싸이코]의 구스 반 산트판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두 작품의 의도와 완성도는 다르다. 하지만 둘 모두 관객에게 같은 질문을 남긴다.

이미 존재하는 훌륭한 영화와 거의 같은 영화가 다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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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대가 실사 영화를 더 잘 보니까”, “극장에서 크게 볼 수 있으니까”, “좋아했던 장면을 현실적으로 보고 싶으니까”는

산업적 이유이자 관객의 욕망으로서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영화의 예술적 필요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원작의 감동을 다시 느꼈다는 만족과, 새로운 작품이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실사판의 호평에는 일종의 보존주의적 쾌감이 있다. 영화는 그 기억을 배반하지 않는다.

감동은 현재의 장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원작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재호출되면서 증폭된다.

이것은 분명 실제적인 영화 경험이다.

그러나 그중 얼마가 실사판의 성취이고, 얼마가 원작이 이미 만들어놓은 감정적 자산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원작에 충실하다는 사실이 칭찬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충실함 자체는 창조적 가치가 아니라 관계의 태도다.

원작을 이해하고 존중했다는 증거는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작품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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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불편한 것은 대중의 반응이 앞으로의 각색에 보내는 신호다.

“바꾸지 마라. 우리가 좋아했던 장면을 그대로, 더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다시 보여달라.”

이 요구가 시장의 정답이 되면, 리메이크는 더 이상 원작과 대화하지 않는다. 원작을 고해상도로 복원하는 서비스가 된다.

창작자는 원작의 결함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다른 시대의 감각으로 재구성하거나, 실사 매체가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시험할 이유를 잃는다.

조금만 달라져도 “원작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최대한 그대로 만들수록 안전한 성공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대한 각색들은 대부분 충실함과 배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원작의 문장과 사건을 바꾸면서도 핵심적인 감각을 더 정확히 포착하거나, 원작에는 없던 관점으로 작품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좋은 각색은 원작을 유리관 안에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다른 몸으로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이다.

이때 변화는 각색자의 오만이 아니라 책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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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관객의 반작용을 무시할 수도 없다. 원작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리메이크는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 아니다.

익숙한 이름과 캐릭터를 마케팅에 사용했다면 그 기억에 대한 책임도 진다.

원작을 빌려놓고 핵심 정서를 무시한 뒤 “새로운 해석”이라고 면책하려는 제작물도 많았다.

그래서 관객이 [드래곤 길들이기]의 보존성을 환영한 것은,

상상력이 결핍돼서만이 아니라 무책임한 변화보다 성실한 반복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 “망칠 바에는 그대로 만들어라”는 이해 가능한 방어 논리이지, 예술의 이상적인 원칙은 아니다.

그것은 최선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요구다.

각색자를 믿을 수 없으니 창작권을 박탈하고 원작을 복사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 논리가 정답으로 굳으면 결국 관객이 얻는 것은 실패하지 않는 영화이지, 새롭게 성공하는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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