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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록 성향은 당대에 당연하다 생각한 것들에 대한 기록은 좀 많이 소홀한 느낌
근데 현대의 우리라고 별로 다를건 없어보이는게... 보통 기록은 특별한것 위주로 남기다보니...
sns같은것도 그것만 보면 세상 사람들 다 잘 사는줄만 아는 것처럼...?
대표적으로 버선코칼이 왜 그 모양인지 기록된 게 전무해서 이유를 알 수가 없음
애초에 기록 강국 어쩌고 프레임 씌울 때 자주 들먹이는 게 조선왕조실록인데 말 그대로 왕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기록이기 때문에 신변잡기적 기록은 많이 소홀하고 왕조에 옹호적인 기록 위주로 남겨지기 마련임 사관의 여러 중립적 시각으로 쓴다는 기록 이야기를 많이들 언급하면서 중도적 시각에서 썼다고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도 그때 당시 사회 분위기에 따라 글에 각종 사견과 사관이 얽혀 쓰이게 되는데 왕정국가에서 중도적 시각이라는 게 말이 될리가 없지
그리고 민간, 신하의 입장의 기록이 남아있기 힘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왕조실록은 세초 작업을 거친 2차 기록물에 가깝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1차 기록물은 승정원 일기나 세초하지 않고 남겨진 조선왕조실록으로 편집되기 전 기록물이 진짜 기록물이라 할 수 있음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 입장에서 조선왕조실록도 엄연히 1차 사료긴 하지만
SNS야 말로 기록의 보고지.
그 당대 시대에 뭘 먹었는지 뭘 고급으로 쳤는지 다 알 수 있음
이 거울상이 유럽 역사기록인데
30년 전쟁 전투를 일자별로 재현도 가능하고
독일주택을 무슨재료를 얼마 비율로 지었는지도 기록이 남아있고
미국인이 자기조상이 메이플라워 호 타고왔는지 아닌지 조회도 가능함
사람들이 중세 유럽을 진짜 암흑기라는 단어 하나에 꽂혀선 별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현대인들이 관심 가지고 의미와 가치를 두는 기록은 유럽 쪽에 더 많긴 하지 그래서 일상사, 미시사 영역의 발전도 서구쪽이 선도하기도 한 이유기도 하고
전란이 많고 연료가 부족함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의경우 공문서의 집합체이라서..
정치적인 내면을 알기는 정말 힘든거임..
지금도 정적이라고 알려진사람들이 진짜 정적인지..
아군이라고 하는 사람이 진짜 아군인지 절대모름..
정치는 온갖 욕망의 용광로라...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되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등에 비스꼽는 새끼가 되는거라..
정치는 빼고 봐야지... 그대신 공문서로써의 데이터는 믿을만할꺼임..
행정을 실행한 결과물들의 총아라
괜히 요 근래에 미시사 관련으로 열 올리는 것이 아님
"어머, 나같은 미시가 뭐가 좋다구..."
미시사 열풍은 2천년 초반부터 있었는데 한국 기록들에서 이걸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냐 당장 일제강점기 시절 기록만 해도 당시 물가와 각 직업별 월급 상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제적 차별행태를 완전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인데 조선시대는 더더욱 힘들지
걍 실록도 대단한거 맞다. 까지만 하면 될걸 타국과 비교를 하니 슬슬 선을 넘드라
아니, 이건 작정하고 속인 거잖아 ㅋㅋㅋ
당시 신료들도 다 속았는데 기록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경하고 있었어도 모르는 걸 기록 탓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ㅋㅋㅋㅋ
그걸 다 적기엔 제 3자 관찰자 입장인 절대 신 같은 존재가 기록해야 할꺼. 하지만 실록 편찬은 아들이나 손자가 할수 밖에 없고, 선왕의 과오나 실패 실수를 기록으로 남기는거 자체가 어려움
대놓고 고종 순종실록은 아예 반달친 물건이라고 해서 평가로 해석한 실록이 되어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