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가 기독교 근본이 된 이유
※주의※
이 이야기는 인터넷 농담 수준으로 중요한 부분이 많이 잘려 있습니다.
실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전공 서적을 찾으시거나
역사 서적을 확인하세요.
자. 시대는 300년대 아직 로마가 전?통놀이에 빠지지 않?았던 시기
로마 44대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즉위하고, 기독교를 허가하던 시기다.
그렇게 허가된 기독교는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삼위일체를 근본으로 삼은 니케아파와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교리 전체를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아리우스파
크게는 이렇게 둘로 나뉘었다.
당연히 이 시기에는 뭐 제대로 정해진게 없으니
서로 그냥 신나게 싸웠고
▲니케아 공의회에서 사이킥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주교 마그누스(31001년 작)
결국 그 꼴을 보다 못한 우주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당대 기독교인을 모아 니케아 공의회(325)를 열게 된다.
여차저차 이러쿵 저러쿵 해서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지정되었으나
당시에는 이단이고 파문이고 뭐 그리 쎈게 아니라서 아리우스파들은 쌩가고 주장을 다시 전파했으며
이후 황제조차도 아리우스가 맞는 것 같은디...?
듣고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는 일이 수십년간 이어진다.
실제로 아리우스파의 논리는 당대엔 상당히 매력적인 내용이었기에.
파문 선고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파는 계속 힘을 유지했다.
이 논쟁이 끝난 것은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56년 지난 뒤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였으며
여기서 아리우스파는 권세가 확 꺾이게 된다.
이유가 뭐냐구요?
키배를 개털렸기 때문이다.
농담 안 하고 정말 영혼까지 개털렸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삼위일체를 정립한 중요 인물 중 하나이자
황제한테도 님 틀렸는데 어쩔? 저 죽이쉴?
하다가 진짜 죽을뻔했는데도
그으으으거 아닌 거 같은디 하면서 책을 쓴 진퉁 미치광이 키배러가 강림하셨다.
아리우스파가 게르만족 전도와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동안
이 양반은 삼위일체를 미친 듯한 속도로 책과 논리를 찍어내며 현재 기독교 신학의 기반을 다졌고
해당 양반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리기 전에 사망했지만
쌓아놓은 기반은 다른 지지자의 논리와 합쳐져 엄청난 규모가 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신학논쟁을 하니 아리우스파는 반박하기 어려운 상황을 자주 마주했다.
특히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아리우스파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를 위대한 피조물 정도로 보았으나.
"님 그러면 예수님은 피조물로서 고통받으셨으니
우리는 피조물로 인해 원죄를 구원받았네요?"
"아니... 그,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피조물"
"아무튼 피조물이죠."
"어? 그럼 우리는 뭘 섬기는거임?
헉 설마 님... 우상숭배...?"
이 치명적인 일격은
(사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며 고도한 논의가 오갔지만 이건 인터넷 유머다)
아리우스파를 박살 내게 되었고.
그 뒤로도 이 삼위일체를 나라면 파훼할 수 있다! 라는 양반들이 무수히 나왔지만
시작부터 키배로 단련되고, 천년 넘게 이것만 파온 양반들을 이길 순 없었다
끝.
(사실 저 이후로도 더 싸웠는데 로마 황제 쪽이 삼위일체로 완전히 기울면서 몰락했다)













결론 : 키배에서 지면 멸문지화를 당하니 키배 뜰 때는 목숨을 걸어라
그냥 세속권력이 선택한쪽이 이겼다는 소리잖아...
사실 그게 맞긴 한데
그전까지 황제들이 아리우스 지지도 하다가 권세가 확 꺾인게 저것때문이긴 해서
그리스햄들한테 쳐맞을 때 익힌 기술을 그대로 씀
삼위일체가 이해하기 난해하긴 한데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인정하는데 이거만한 이론이 없음
그리고 그게 기독교의 핵심교리고
자칭 신의 아들이라는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 우리를 구원하였다 어쩌고 저쩌고
길고 지루하고 현학적임
헐? 님 그럼 우상숭배함?
쉽고 간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