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그래서 유약이 누군데 씹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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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위나라 수수께끼의 개국공신 유약의 진실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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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추리를 통해 우리는 유약의 정체에 상당히 근접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촘촘히 걸러낸 유약의 조건에 집어넣을 후보군을 좁힐 추가적인 정보다.
이를 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주어진 정보, "보국장군 청원향후 유약"을 잘 살펴보자.
삼국지의 후작위는 봉토가 없는 관내후와 봉토가 있는 정/향/현후로 나뉜다.
유약은 213년에는 청원정후였다가 220년에는 청원향후로 승진한다.
승진을 해도 봉토 변화가 없는 것을 보아 유약은 청원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청원향이 대체 어디냐면, 현재의 바오딩 시이다.
그리고 바오딩 시는 바로 유주에 있다.
유주에 근거지가 있고... 유씨에... 조조와 별개 세력?
바로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을것이다.
바로 후한의 방계황족이자 유주자사, 유우다.
유우는 뛰어난 인품과 학식으로 매우 명망이 높았던 인물로, 지식인, 백성, 심지어 이민족까지 유우를 칭송했다고 한다.
훌륭한 명성 덕에 한때 원소가 동탁에 대항하기 위해 그를 황제로 추대하려고도 했는데, 유우 본인이 거절하고 헌제를 인정하며 무산된다.
중앙정부가 무력화된 현실 속에서 하북의 패권을 놓고 원소와 공손찬이 대립하는 혼란스러운 정세...
이런 상황에서 공손찬의 상관이었던 유우는 이민족에 대한 유화책을 추진하며 "이민족 킬러" 공손찬과 계속 충돌하였다.
갈등이 극에 달하자 유우는 공손찬을 토벌하기 위해 군을 일으켰으나 빠르게 공손찬한테 개박살난다.
평소에 쌓인게 많았던 공손찬은 마침 가뭄도 왔겠다, 유우 너에게 정말로 인덕이 있다면 내일까지 하늘에 빌어서 비를 내려보라고 했다.
당연히 비는 오지 않았고, 공손찬은 이걸 명분삼아 유우와 그 일가족을 처형해버린다.
이 사건으로 공손찬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어 유비, 조운, 전예 등이 슬쩍 공손찬 세력에서 이탈해버린다.
하지만 유우의 세력이 유우의 사망과 함께 완전히 와해된 것은 아니다.
유우의 아들인 유화는 원래 원술에게 납치되어 있다가 겨우 탈출했는데, 아버지에게 합류하려다 또다시 원소한테 납치당한 덕분에(ㅋㅋㅋㅋ) 화를 피했으며,
유우의 부하인 선우보, 협력관계에 있던 염유 역시 남아있는 유우의 잔당을 긁어모아 유주에서 공손찬과 대립한다.
신이 난 원소는 황족 유우를 살해한 천하의 인간쓰레기 공손찬을 비난하며 하북의 민심을 모았다.
마침 원소의 손에 들어와 있던 피치공주... 유화는 좋은 도구가 되었는데, 유화를 지원하여 반공손찬 세력의 구심점으로 세운 것이다.
실제로 이 유우파 세력은 나름의 성과를 내었는데, 유우의 시체를 되찾아 장례를 지내기도 했다.
195년에는 유화, 선우보, 국의가 모여 공손찬을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고립당한 공손찬은 점점 원소에게 영향력을 빼앗기다가 결국 역경루에 틀어박혀 자살한다.
이렇게 하북의 패자가 된 원소와 어느새 중원을 정리한 조조는 관도대전을 시작한다.
흔히 관도대전이라고 하면 이런 식의 직관적인 세력구도, 하북 4주(유주 청주 기주 병주)를 완전히 평정한 원소와 중원의 조조가 붙는 그림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따져보면 이런 느낌의 지도가 나온다.
사실 원소도 딱히 유우와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선우보-염유 포섭에 실패하였고, 조조에게 기울어진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원소의 차남 원희가 배치되었다.
원소와의 기나긴 악연을 자랑하는 병주의 흑산적 수장 장연은 당연히 조조에 붙었고, 이쪽은 원소의 조카 고간이 담당하였다.
원래 공손찬의 세력권이던 청주는 원소의 장남 원담이 장악하는데 성공했으나 조조에게 귀순한 서주의 장패가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청주 남부를 공격하면서 원담을 견제하였다.
자주 생략되는 인물들이지만 이런 중소 군웅들의 비중과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원소라고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조조가 중소 군웅들을 활용했다면 원소는 보다 메이저한 군웅들을 이용했다.
우선 당시 세력순위 3위 유표가 친원소파였는데, 문제는 형주 남부의 친조조파 장선의 반란과 장수의 조조군 전향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 원소는 아쉬운대로 유비를 남쪽으로 파견보내 황건적 공도와 협력시켜 여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조인과 이통이 이걸 막으러 갔다)
오환족의 선우 답돈 또한 원소에게 포섭되어 유주를 견제하였는데, 인연이 꽤 끈끈하여서 끝까지 원소와의 의리를 지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북전선에 조조군의 주력이 집중되어 있는 동안 먹음직스럽게 노출된 뒷통수를 때려줄 소패왕, 손책이 있었다.
근데 진등컷당하고 죽음 ㅋ
여차저차 해서 관도대전이 조조의 승리로 끝나고 원소가 급사하자 하북의 정세 역시 정리되었다.
선우보, 염유, 장연 등등이 차례로 조조에게 정식으로 귀순하였고 마등과 유장도 친조조파로 돌아서게 된다.
근데 선우보는 어째 유주 군벌이라는 양반이 관도대전 시점에 이미 조조군 막사에 와 있는데 아마 진작 원희&답돈한테 개털려서 세력 다 날려먹고 몸만 조조한테 도망친듯...
그건 그렇고, 이 관도대전 이야기에서 여러 익숙한 이름들과 사라진 이름이 보이지 않는가?
유주자사 유우의 아들이자 잔존 유우 세력의 얼굴마담이었으나 죽었다는 말도 없이 195년 이후로 갑자기 기록에서 자취를 감춘 유화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나타나 위나라 서열 5위를 차지하였고 유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유약
유우의 부하이자 유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위나라 서열 6위 선우보
유우의 세력에 속해 있었으며 역시 유주에 근거지를 둔 위나라 서열 9위 염유
더욱 흥미롭게도 원래 유약이 가지고 있던 관직인 보국장군은 훗날 유우의 부하 선우보에게 넘어간다.
원소세력이 패망하자 유우의 아들 유화는 유유히 조조에게 나아가 허리를 굽히고 조조의 트로피가 되어준 것이다.
유화가 정말로 유약이라면, 아무런 행적 없이 조용히 살던 유약이 왜 선양 문제에서 갑자기 나타나 대표로 상소문을 올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진다.
후한의 건국자 광무제의 후손이자 한때 헌제에 맞선 대립황제로 거론되기도 하였던 명망 높은 황족 유우.
그런 거물의 아들조차 선양에 찬성한다는 것만큼 좋은 정통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유약이 유화 였어?
추측정도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