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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리th.. | 25/01/25 11:14 | 추천 6 | 조회 114

[유머] 겨우 생선 때문에 벌어진 전쟁 +114 [2]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9296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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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은 예로부터 제일 접하기 쉬운 단백질원이었고

지금도 다양하게 소비되는 식재료다


그런데 고작 이런 물고기 때문에 벌어진

냉전시기 유럽의 전쟁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잠시만, 냉전?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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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런 사건에서 빠지면 섭섭한 그 새끼,

오늘도 이 새끼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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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식민지 출신의 척박하기 그지 없는 땅,

아이슬란드


이 시절 그럴싸한 산업도 없는 아이슬란드가

먹고 살 길은 오직 어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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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덴마크는 아이슬란드와 페로로부터 

50해리는 외국의 어업을 금지했지만

영국은 이를 지키지 않아 마찰이 있었다


1901년 협약에서도 3해리까지만 인정해놓고

그 3해리조차 침범하는 일도 잦았다


1,2차 대전기 동안은 발등에 불 떨어져 조용했지만

전쟁 끝나자마자 바로 침범하는 등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로 인해 경비대를 조직하고

1944년 독립 후 출범한 정부는

어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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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구 전쟁은 1945년 트루먼 독트린이 시발점이었다


이때 아이슬란드는 어업구역을 4해리로 늘리다

1958년 9월, 12해리까지 넓히는 선언을 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영해 밖에서 

관할권 주장이라고 반대했고

자국 어업선단에 구축함과 호위함을 파견했다


이에 맞서 아이슬란드도 경비정을 동원했고

몇 차례 마찰 이후 1961년, 영국이 물러나지만

이후 마찰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는 조약으로

아이슬란드의 발을 묶었다


참고로 양측 전력은

아이슬란드: 순찰선 8척

영국: 구축함 28척/호위함 32척/기타 12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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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구 전쟁은 1972-73년에 발생했다

10년 뒤 집권한 야당 연립정권은 어업관전수역을

50해리까지 확대한다고 나섰고


영국은 어획량 제한과 사법재판소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아이슬란드가 거부하며 발발했다


영국과 서독(1차때도 있었음)은 여전히 어선을 보냈고

냉전이 한창에 1차때 군함의 호위가 방해가 됬기에

이번엔 군대의 출동은 없었다


이에 아이슬란드 경비대는 그물커터로 어선들의

그물을 잘랐고 수십척의 어선이 희생자가 되었다


이에 영국이 재차 군함을 파견하자 빡친 아이슬란드는

실탄 발포 및 충각으로 대응했다


와중에 8월, 분쟁 중 아이슬란드 경비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에 국교 단절을 선언하자


1973년 11월 8일, NATO의 중재 하에

영국의 활동범위를 50해리로 제한하는

2년짜리 협약이 맺어졌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975년, 3차 전쟁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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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갈수록 줄어드는 대구 어획량으로

아이슬란드 정부는 200해리까지의 확대를

선언했다


당연히 영국은 반대했고 

제 3차 대구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기간 동안 아이슬란드 선박들은

영국 전함에 대한 충각으로 대응했고

1976년, 아이슬란드는 NATO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에게 호위함을 구매하려 했지만

미국은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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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이슬란드는

소련 호위함 미르카급을 구매하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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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루어진다면 소련 입장에선 아이슬란드와의

동맹이 가능했고 이말은 즉슨,

북대서양에 소련의 군대가 배치 될 수 있었다


이게 된다면 소련 폭격기와 잠수함들이

북대서양을 활개치고 제 3차대전이 터지면

대서양 항로의 절단으로 보급이 끊김을 의미했다


경악한 미국과 NATO는 영국에 압박을 가했고

결국 영국은 아이슬란드의 주장을 인정해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3차례에 거친 전쟁 아닌 전쟁은

아이슬란드의 승리로 끝났다


아쉽게도 아이슬란드의 대구 어획량은 계속

줄어들었고 현재는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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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영국과 국교는 수복했지만

영국의 어업계는 작살이 났고


전함 수리비와 더불어 영국이 해전에서

패배했다는 업적 아닌 업적이 남게 되었다


메테다시 메테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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