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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은간.. | 16/09/13 07:50 | 추천 50 | 조회 4302

[단편] 장모님의 비밀 +2592 [21]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67867

" 장모님? "

시내 거래처에 업무를 보러 가던 '김남우'는 본인의 눈을 의심했다.
모텔에서 젊은 남자의 팔짱을 끼고 나오는 여인의 얼굴이 장모님과 같았다.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차를 움직여 확인해보지만, 장모님이 확실했다.

하루 종일 김남우의 머리가 복잡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아내에게 말을 해야 할까? 못 본 척 지내야 하나? 앞으로 장모님 얼굴을 어떻게 볼까? 그렇게 사람 좋으시던 장모님이 어떻게 그런?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김남우는, 아내 '임여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질 못했다.
늘 하던 것처럼 저녁을 먹고, 함께 TV를 보다가, 김남우의 어색함을 느낀 임여주가 물었다.

"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 응? 아, 아니... "

당황스러운 김남우. 여전히 머릿속으로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말해줘야 하는 걸까? 비밀을 지켜야 하는 걸까? 장모의 외도를 목격한 사위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가뜩이나 임여주는 장모님 얘기에 민감했다.
갈등하고 갈등하다가, 한 번 운을 띄워보았다.

" 여주야. 만약 내게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차라리 모르고 지나는 게 나을까, 괴롭더라도 아는 게 나을까? "
" 왜? 글쎄, 그래도 아는 게 낫지 않나? "
" 아, 그래...? "

잠시 고민을 하던 김남우는 결국, 이야기하기로 했다.

" 여우야 사실... "

어렵사리 꺼내는 김남우의 이야기를 들은 임여주는 바로,

" 씹할! "
" ! "

놀람보다, 즉각적으로 화를 표출하는 임여주의 모습에 김남우는 놀랐다. 마치, 원래 알고 있었던 사람과 같았다.

" 너도 알고 있었어? "
" ... "

대답 없이 입을 다물어 버리는 임여주. 눈치를 보던 김남우도 입을 다물었다.
임여주를 힐끔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김남우. 그러고 보면, 아내와 장모님의 사이는 조금 이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이상했다.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 좋은 모녀인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남처럼 무뚝뚝해지는 모습이라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들은 게 아닌 것

같은 장모님의 '재수 없는 년'이라는 작은 욕설. 처가에서 식사 중에 아내의 국그릇에만 가득했던 소금 맛 등, 이상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현재, 친정엄마의 불륜 소식을 듣고도, 생각보다 담담한 모습까지. 아내와 장모님의 관계는 너무나 미스터리했다.

결국,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한 김남우,

" 그, 저기. 장인어른도 아셔야 할까...? "
" 됐어! "

관심 끄라는 듯, TV만 보고 있는 아내. 김남우는 머쓱히 입을 다물었다.

.
.
.

" 엄마아~~! "
" 아이고 우리 딸~! "

주말을 맞이해 들른 처가. 환하게 웃으며 포옹하는 아내와 장모님의 모습을 본 김남우는 혼란해졌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장모님은 또 저렇게 좋으신 분이 어떻게 불륜을 저지르셨을까?
김남우는 장모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질 못했다. 그런 김남우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환영하는 장모,

" 어이구 우리 김서방~! 김서방 좋아하는 갈비탕 해놨으니까 기대해~ "
" 예, 예 예.. 감사합니다. "

뻘쭘한 김남우는, 얼른 소파에 앉아있던 장인어른께 가 인사를 드렸다.

" 안녕하십니까 장인어른. "
" 왔는가? "

장인어른은 무뚝뚝하게 대답 후, 바둑 채널로 시선을 돌렸다. 그 얼굴을 보니 김남우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내와 하하 호호 웃고 있는 장모님을 힐끔 보며, 다시 한 번 모텔 앞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장인어른에 비해 장모님은 유독 젊어 보였다. 관리를 잘 하신 건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의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외도를 하게 된 걸까?
김남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사실을 장인어른께 말하고 말고는 아내의 뜻에 맡기겠지만, 아무래도 장인어른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저녁 식사를 끝내고, 거실에서 다 함께 TV프로를 보던 시간. 김남우가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먼저 화장실 안에 있다가 나오던 장모와 마주치고, 장모는 웃으며 김남우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 화장실 가게~? "

그때, 주시하고 있던 임여주가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왔다.

" 아 뭐해! "

당장 장모의 손을 홱! 치워버리는 임여주! 장모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지나갔다.
김남우는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가 아내와 장모님의 사이는 어떤 사이란 말인가? 아까까지만 해도 하하 호호 화목했던 둘이, 갑자기 또 이렇게 냉랭해지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남우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니, 아내와 장모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김남우는 장인어른과 단둘이 있기가 불편해, 잠깐 바람을 쐬러 현관문 밖으로 나갔는데, 비상계단 쪽에서 아내와 장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내용을 훔쳐 듣게 되는 김남우. 아내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 좀 신경 써달라고 했잖아! "
"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
" 오빠한테는 제발 들키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몇 번을 부탁했어?! "
" 그래서 내가 신경 쓰고 있잖아, 이 년아! "

' 흡! '

장모의 스스럼없는 욕설에 눈이 커지는 김남우!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장모님의 말투였다!

" 신경을 쓰긴 뭘 써?! "
" 뭘 어쨌다고 자꾸 지랄이야?! "

" 이익! 오빠가 다 봤다고! 네가 모텔에서 남자랑 나오는 거! "

김남우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더 놀라운 건, 전혀 당황하지 않은 듯한 장모님의 나른한 목소리였다.

" 흐~응, 그걸 봤다고? "

" 그러니까 제발 좀! 어디 가서 뭘하든 상관 안 할 테니, 같이 있을 때 만이라도 좀 신경 써달라고! "
" 알았어 이 년아~ 그만 좀 해~! "
" 어휴~! "

얼른 집으로 돌아가는 김남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곧 함께 들어오는 아내와 장모님,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김남우는 힐끔힐끔, 자꾸만 둘의 눈치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김남우는 거실에 나와 TV를 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인어른을 생각해 볼륨을 줄였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장모가 밖으로 나오는데-,

" ! "

김남우의 두 눈이 커졌다! 장모님의 옷차림이 너무 야했다. 가슴이 확 파인 티셔츠에, 아주 짧은 반바지로 몸매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곧 김남우의 바로 옆으로 붙어 앉는 장모,

" 뭐 재밌는 거 해~? "
" 네?! 아, 네네? "

극히 당황하는 김남우! 곧 장모의 몸이 김남우 쪽으로 기대어왔다. 장모의 상체가 숙여지며 헐렁한 티셔츠 안이 모두 비치고,

" 음! "

속옷을 차려입지 않은 모습을 보고 급히 눈을 돌리는 김남우!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장모는 은근히 웃으며 즐기듯, 김남우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김남우가 당황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그때,

" 미친!! "

임여주가 득달같이 달려와 장모의 팔을 잡아뺐다. 소파 옆으로 내팽개치듯 넘어졌지만 깔깔깔 웃어대는 장모! 임여주가 이를 갈았다.

" 진짜...! 진짜...! "

임여주가 잡아 먹을듯한 눈빛으로 장모를 노려보고, 한참 깔깔대던 장모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남우는 어쩔 줄을 몰라, 아내의 눈치만 살폈다. 장모가 들어간 방문을 죽일 듯 노려보는 임여주의 눈매가 매서웠다.


.
.
.


김남우와 임여주가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는 현관 앞. 김남우의 얼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걸 본 표정이었다.
아내가 장모님과 따뜻하게 포옹을 하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 또 올게 엄마~! "
" 그래~ 조심히 가고~ 김치 싸준 거 냉장고에 바로 넣고~ "
" 응~! "

김남우는 도무지, 둘의 관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복잡한 얼굴로 아내와 장모를 힐끔거렸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


.
.
.


마주 앉은 김남우와 임여주. 분위기가 무거웠다. 김남우의 모든 질문에 대해, 임여주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말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뜬금없는 말이었다.

" 난 쌍둥이로 태어났어. "

" ? "

처음 듣는 얘기에 의문을 띄우는 김남우의 얼굴. 거기서 이어진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 엄마가 우리를 낳을 때, 언니는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렸어. 근데... 그때 죽은 언니의 영혼이, 우리 엄마에게 씌어버린 거야. "
" 뭐?? "
" 그때부터 엄마의 몸을, 엄마와 언니가 공유하게 됐어. 어쩔 땐 엄마로, 어쩔 땐 언니로... "
" 그게 무슨?? "

" 오빠가 봤던, 모텔에서 나온 엄마는... 우리 엄마가 아니라 우리 언니, '임여우'야. "
" ... "

김남우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 혹시 어머님께서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정신적 문제가 생기신 게 아니야? 병원에는- "

그 말을 끊는, 임여주는 단호했다.

" 당연히 가봤어. 아니야. 아니야. 정신병도 아니고 다중인격도 아니고, 우리 언니가 맞아. 언니의 영혼이 엄마의 몸속에 들어간 거야! "

김남우의 입장에서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아내의 표정을 보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말을 잇는 임여주는 조금씩 격앙되어 가며,

" 어릴 적부터 그랬어! 언니는 자신이 태어나지 못한 분노를, 모두 나에게 풀었어! 내 탓이라며! 왜 나만 멀쩡히 태어난 거냐고! 오빠는 몰라. 쌍욕을 하며 때리다가, 갑자기 울며 안아주는 엄마가 있어 봤어? 발가벗겨 집 밖으로 내쫓았다가, 울면서 찾으러 오는 엄마가 있어 봤어?? "
" ... "

" 엄마도, 아빠도, 우리 집안에서 언니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죄책감 때문에. 태어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언니는 엄마의 몸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고, 엄마의 몸으로 성형 수술을 하고, 남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그래도 우린 다 참았어. 언니는 몸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으니까! "
" 그런...! "

격앙되어 말하던 임여주의 눈매가 순간 차가워졌다.

" 한데, 이젠 용서할 수 없어. 두 번이나 그럴 순 없다고! "
" 뭘...? "

아내의 차가운 눈빛에, 침을 꿀꺽 삼키며 묻는 김남우. 돌아오는 대답은 김남우의 눈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 오빠 만나기 전에 사귀던 내 남자친구랑... 잤어. "
" !! "
" 두 번은 안 돼. 절대로! "

임여주의 서슬 퍼런 눈빛에, 김남우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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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 속, 색동옷을 곱게 차려입은 가옥 한 채. 그 집으로 김남우와 임여주가 들어갔다.
신을 모시는 늙은 무속인은, 이야기 끝에 한 묶음의 부적을 꺼내놓았다.

" 이게 뭐죠? 이걸 붙이라고요? "

임여주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무속인,

" 먹여. "
" 네? "

임여주의 미간이 좁혀졌다. 먹이라니? 이 부적들을 어떻게?
무속인은 곧, 부적 한 장을 꺼내어 촛불에 태웠다.

" 네 언니로 있을 때 이 잿가루를 먹여. 그러면 점점 네 언니로 있는 시간이 짧아질 거야. "
" 아...! "

옆에서 보던 김남우는 뜬금없을지 모르겠지만, 발암물질이 걱정됐다. 차라리 어머님을 모시고 좋은 병원에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순 없었다. 임여주가 얼른 그 부적 뭉치를 낚아채 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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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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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임여주는 부적을 김남우에게 내밀었다.

" 오빠가 먹여. "
" 뭐? 내가? "
" 주말에 봤잖아? 언니가 분명 앞으로도 오빠한테 수작을 걸 거야. 적당히 맞춰주면서 먹여. "

김남우는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해...? "

" 내가 주는 건 절대 안 먹을 거라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오빠가 해야 돼. 대신에... 정도를 넘지 마 절대로! "

임여주의 눈빛이 싸늘해졌고, 불안한 얼굴의 김남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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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휘젓고 있는 김남우의 손이 조금은 떨리고 있었다. 이미 잘게 가루를 낸 태운 부적찌꺼기가 커피 속에 들어가 있었다.

" 장모님... 커피 한잔 하시죠. "
" 어머~ 고마워 김서방~ 흐흥, 이리 와 앉아. TV에 재밌는 거 하네~ "

김남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장모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내와 장인어른이 함께 외출을 나간 처갓집. 이미 장모의 옷차림은 김남우가 눈 둘 곳이 없었다.
쭈뼛쭈뼛하면서도 미션을 수행하려는 김남우.

" 친구한테 얻어 온 커핀데, 이게 좀 비싼 커피입니다. 맛이 조금 다르실 겁니다. "
" 어머 그래? "

김남우의 눈이, 커피잔을 갖다 대는 장모의 입술로 향했다.

" 음.. 조금 특이하네? "
" 아! 그 맛에 먹는 거랍니다. 커피 애호가들이.. 그, 그게, 네에. "
" 그래? 음~ 맛있네. 고마워~ "

웃음을 흘리던 장모의 몸이, 김남우에게로 바싹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경직 된 김남우! 장모의 손길이 김남우의 팔을 쓸었다.

" 운동 많이 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리미리 운동해둬야 돼~ "
" 아...그, 그게 시간이 없어서... "
" 근육이 별로 없네? "

장모의 손길이 김남우의 몸을 여기저기 쓰다듬고, 김남우는 도대체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 건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는 김남우,

" 아, 저, 에어컨을 좀, 틀까요? "

더듬거리는 김남우의 말에 장모는 피식 웃으며, 헐렁한 윗옷을 훌렁거렸다.

" 그래~ 좀 덥다. 그치? "

그 모습에 급히 고개를 돌려 에어컨으로 향하는 김남우는, 속으로 아내의 이름을 찾았다. 미칠 것 같으니 제발 빨리 돌아오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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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야,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돼? "

김남우가 지친 얼굴로 물었다. 임여주는 남은 부적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 효과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
" 정말 미치겠다 여주야. 이제 그만하자. 어? 솔직히 내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이런 미신이 통하는지 아닌지는 제쳐놓고서도... 차라리, 어머님 모시고 좋은 병원에 한 번 들르자. 어? 여주야. "
" ... "
" 나 정말 힘들다... "

이미 김남우의 입으로,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다 들은 마당이었다. 그래도 임여주의 얼굴엔 미련이 남았다.

" ... 남은 부적까지만 다 먹여보자. "
" 여주야! "
" 얼마 안 남았잖아! 응?! 좀만! 조금만! 응?! "

김남우는 인상을 쓰며 원망하듯 말했다.

" 여주야 너 그러다 진짜, 나랑 장모님이랑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

그럴 일이 전혀 없을 거란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임여주는 미안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 부탁이야... 조금만... "
" ... "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고 마는 김남우였다.


.
.
.

임여주는 마지막 남은 부적을 처리하기 위해 엄마를 집으로 불렀다.
언젠가 김남우가 임여주에게 물었었다.

[ 장모님인지, 언니인지는 어떻게 구별하는데? ]

임여주는 자신 있게 대답했었다.

[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 엄마의 눈빛과 언니의 눈빛은... 너무나도 다르니까 말이야. ]

임여주는 지금 이 순간, 엄마가 언니로 변한 것을 캐치해냈다. 곧, 남편에게 눈치를 주고 자리를 비웠다.

"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나 동네 언니 머리 염색하는 것 좀 도와주고 올게! 조금 걸릴 거야. "
" 어, 어어... 그래. "

김남우는 또다시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나마 마지막이라 다짐하며, 부적 한 장과 라이터를 꺼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 에휴... "

한숨을 쉬며 쭈그려 앉아 부적에 불을 붙이는 김남우. 한데...!

" 뭘 태우는 거야? "
" ?! "

김남우의 고개가 황급히 뒤로 돌아가며 장모의 눈과 마주쳤다!

" 웬 부적? "
" 아, 그. 그, 아, 그...! "

너무나 당황스러워하는 김남우의 모습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싸늘해지는 장모의 얼굴!

"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왠지, 나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단 말야? "
" 아, 그, 그! 아뇨, 그 그~ 어~... "

말을 못하는 김남우의 얼굴이 아찔해지며, 두 눈이 질끈! 감겼다.


.
.
.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대기하던 임여주는, 김남우의 문자를 받고 두근두근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한데, 그 기분은 곧 차갑게 식어야만 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타버린 부적의 잿가루가 대놓고 놓여있었다.

" ... "

그런 임여주를 바라보며 싸늘히 비웃는 임여우.

" 너도 참 희한한 짓을 한다? 남편까지 팔아서 말야? "
" ... "

이를 악물며 성큼성큼 걸어와 마주 앉는 임여주.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김남우는 둘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고 있을 뿐,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임여우는 임여주를 보며 피식 웃더니 곧,

' 바스락! '

타버린 부적의 잿가루를 집어, 쌩으로 먹어버리는 임여우! 임여주의 눈이 부릅떴다!

" 어...어...! "

손가락이 새까매지도록 집어먹다가, 아예 허리를 숙여 얼핏, 요사스럽게 혓바닥으로 핥아 먹는 임여우!
김남우와 임여주의 눈이 흔들릴 때, 혓바닥으로 입안을 흩어 낸 임여우가 웃으며 말했다.

" 부적값 비쌌니? 어떡해? "
" ... "

부들부들 떨리는 임여주의 얼굴,

" 대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언니는! "
" 너야말로 왜 그러는데! 미쳤어?! 돌았어?! 헛돈 써가면서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있는 거야?! "

순간! 임여주가 참지 못하고 꽥! 소리 질렀다!

" 언니가 사라졌으면 좋겠으니까-!! "
" ! "

순간 굳었던 임여우의 얼굴이, 금이 가듯 일그러져갔다!

"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감히 네가? 감히 네가?? "
" ... "

" 다 가진 년이, 내가 가지지 못한 걸 혼자 다 가진 년이! 뭐? 뭐라고? 하하하하! 네가 학교에 갈 때 난 집구석에 처박혀 집안일을 해야 했어. 네가 친구들을 사귈 때, 난 동네 아줌마들 비위를 맞추고 다녀야 했어. 네가 남자친구를 만나고, 예쁘게 꾸미고, 젊음을 만끽할 때! 난 하루하루 늙는 게 두려워 떨어야 했다고! 내가 왜 그래야 해? 나도 너처럼 태어나고 싶었는데! 왜 나만 그래야 해?! 다 가진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

" 그래서 우리가 다 잘해줬잖아! 언니하고 싶은거 다 하게 해줬고! 언니 짜증도 다 받아주고! 어?! 언니만 괴로웠어?! 나도 친구들처럼 온

전한 엄마를 가지고 싶었다고! "
" 난 아예 엄마가 없었다고-! "
" ... "

폭발하는 두 여인이, 침묵 속에 서로를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한참의 침묵 중에, 임여주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 ...그렇게 살아서 뭐해? 어차피 언니의 삶은 없어. 언니는 그냥 엄마에게 기생하는 병일 뿐이야. "
" ...... "

임여우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워졌다. 핏발이 서는 눈! 부들부들 온몸으로 잔경련이 퍼져나가다, 눈을 감는 임여우! 꺾듯이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떴다.

그 순간, 임여주가 울컥하며 눈물이 주룩!

" 엄마아~! "
" 여주야...? "

와락! 엄마의 품으로 달려들어 눈물을 터트리는 임여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토닥토닥 여주의 등을 두들겨주는 엄마. 한데 그때, 보고 있던 김남우의 귓가에 아주 작은 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 킥 "

" ...! "

내내 긴장하고 있던 김남우의 동공이 천천히 확장되고! 이제는 임여주의 귓가에도 들릴 정도로 웃음소리가 퍼져갔다-

" 킥킥 킥킥킥킥! "
" 어, 엄마...? "

안겨 울던 임여주의 눈이 커질 때, '엄마'가 품에 안긴 임여주의 귓가에 곧장, 속삭였다.


" 난 단 한 번도 네 엄마였던 적이 없어. 네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쭉. "
" !! "

임여주의 얼굴이 무슨 말이냐는 듯한 충격으로 흔들릴 때, 임여우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 뭐? 눈빛만 봐도 엄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하하하하 넌 엄마가 없어! 네게 젖을 물린 것도 나고, 너를 학교에 보낸 것도 나고, 너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키운 것도 모두 나였다고! 나, 임여우였다고! "
" 어, 엄마? 엄마? "

" 너도 나만큼 불쌍한 아이라 생각했어. 나만큼 너도 불쌍한 아이라 생각해서, 그래서 그랬어. 어떻게든 엄마인척 해주자. 난 없더라도, 너는 엄마가 있게 해주자, 불쌍한 아이다. 그렇게 생각했어. "

" 엄마...? 엄마...? "

" 근데. 이제 다 부질없어졌어. 상관없어졌어. 난 이제, 더는 네 엄마로 안 살 거야. 임여우로 살아갈 거야. 앞으로 영원-히. "

넋이 나간 임여주를 일별하고, 돌아서 방을 나서는 임여우. 다리에 힘이 풀린 임여주가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 여주야-! "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 "

넋이 나간 임여주를 바라보는 김남우는,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지독한 무력감에 빠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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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 정말로 잘 생각하셨어요 어머니. "
" 그래 김서방... 고쳐야지. 이게 다 병인데, 꼭 고쳐야지... "

김남우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장모님의 두 손을 꼬옥 붙잡았다. 장모님의 얼굴에서는 임여우의 표독스러운 얼굴이 전혀 보이질 않고 온화했다.
복잡한 얼굴로 장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던 김남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치료가 힘드시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쇼 장모님. "
" 그래 김서방. 여주에게도... 꼭 안부 전해주게. 응? 다음에는 같이 오고. "
" ... 네. 장모님. "

김남우가 씁쓸한 얼굴로 병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남겨진 장모의 얼굴이, 얼굴이, 얼굴이.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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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여주한테 다 말했어! 이제 더는 이 지긋지긋한 연극을 안 할거라고! ]
[ ... ]
[ 나도 이젠 당당히 연애도 하고! 여주처럼 결혼도 하고! 그렇게 살 거라고! 그래도 되지?! 그래도 되는 거지?! 어?! ]

바둑 채널에서 눈을 뗀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곧, 오래된 상자를 가지고 나와,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임여우'에게 내밀었다.
사진 속, 갓난아기를 보고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임여우!

아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그날 태어나자마자 죽은 건... 사내아이였다. 남자... 애였지. ]

얼굴이,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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