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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분간 전업주부가 되었다는 소식과 와이프가 여행을 간다는 희소식을 접한 대학 때 동아리 후배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했다.
하지만 폭염 때문에 와이프와 삼삼이가 떠나기로 한 힐링 여행은 취소되었고, 이미 후배들에게 놀러 오라고 한 상태에서 가정방문을 취소시켜야
하나 고민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와이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놀러 오라고 해.." 라고 했다.
그리고 후배들은 기특하게도 양손 무겁게 우리 집을 방문했다.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좋아하는 삼삼이는 맨발로 달려나가 나보다 후배들을
반겼고, 가끔 같이 만나기도 하고 나이 또래도 비슷해서 그런지 와이프도 후배들이 집에 오는 것이 그리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함께 배달 중국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셨고, 자연스레 지금 사는 이야기, 직장 이야기를 나누다 대학 시절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때 나이는 와이프보다 많으면서 항상 와이프에게 "언니!" 라 부르는 여자 후배가 아무 생각 없이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선배 ***이 기억하죠? 9월에 드디어 결혼한대요."
"***이? 걔가 누구였더라?"
누구긴..내가 복학하자마자 좋아했던 그리고 나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귀자는 제안을 당차게 단번에 거절했던 그 당시 당돌하지만 예뻤던
신입생이지.. 나는 알면서도 마치 처음 듣는 이름을 듣는 척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에이... 형이 **이를 왜 몰라. 형이 걔 엄청 좋아했잖아. 손편지도 쓰고, 비 오는 날 클래식처럼 흉내 낸다고 우산 들고 뛰어다니고.."
"하핫.. 내가 언제.. 내가 그랬나.." 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녀석에게 "닥쳐 이 새끼야.. 니 형수가 듣고 있다고!! 나 맞아 죽어!!"
라고 하고 싶었다.
"맞아.. 걔가 형 첫사랑 아니었나?"
가만히 고추 잡채나 처먹을 것이지 한 녀석이 뜬금없이 "첫사랑"이라는 단어까지 꺼냈다. 내가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내 첫사랑이 아닌데..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그 아이의 이름을 꺼낸 여자 후배는 내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것을 몰랐는지 놀란 표정으로 "정말 성성 선배가 그랬어?
대박.." 이러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삼삼이에게 물만두를 먹이는 와이프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내 지난날이 밝혀지면 와이프 손에 있는 젓가락이 내 이마에 박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지난 풋사랑이 한 가정에 강력한 쓰나미가 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야.. 무슨 걔가 첫사랑이냐.. 아니야.."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정수리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를 빨리 바꿔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때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와이프가 "난 남편의 옛사랑도 이해하는 굿 와이프에요~"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삼삼이 아빠한테 첫사랑이 누군지 들어서 아는데, 대학 1학년 때 사귀었던 분이라고..."
"난 괜찮으니까 오빠 첫사랑 이야기해줘~" 라는 회유에 넘어가 순순히 스무살 풋내기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하고 몇개월간 고통받았던 신혼 초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만히 고추 잡채나 처먹어도 시원치 않은 녀석이 정색하며 말했다.
"형! 나한테는 우리 동기 **이가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 형은 현역일 때 첫사랑, 예비역일 때 첫사랑이 따로 있구나.."
그때까지 나를 남편, 삼삼이 아빠, 부족하지만 뭔가 쓸모는 있을 거 같은 남자로 봐주던 와이프가 여자만 보면 좋아 죽는 껄떡쇠로 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내가 아무리 첫사랑보다 끝사랑이 중요하다! 넌 내 끝사랑이다! 라고 했지만 와이프는 많이 서운했나 말이 없다.
첫사랑이 뭣이 중한디.. 뭣이 중혀.. 지금 함께 사는 사람이 중요하지..
그리고 이 두 녀석.. 내가 복수하고야 만다.. 결혼만 해라 제발..
저는 워낙 악필이라 손편지를 쓰라는 이야기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MOVE_HUMORBEST/1292568
꼬릿말
월요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와이프의 눈치를 봤을 때 내게 농담도 하고 다행히 기분이 풀린 거 같았다.
그리고 출근하기 바로 전
"그런데 우리 오빠 젊었을 때는 로맨티시스트였네.. 손편지도 쓰고. 그런데 왜 나한테는 한 번도 안 써줬어? 집에서 TV만 보고 있지 말고
나한테 손편지라는 거 한 번 좀 써봐.."
"으..응? 뭐.. 그러지.."
삼삼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볼펜을 들었다. 논문을 쓸 때보다 보도자료를 쓸 때보다 더 힘들었다.
하지만 난 꿋꿋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썼다.
존경하는 조정래 선생님의 말씀처럼 불의에 저항하고 올바른 길을 옹호하는 마음으로 진실만을 담은 글을 썼고 와이프가 퇴근했을 때
내 사랑의 엑기스를 듬뿍 담은 글이 담긴 편지가 있는 흰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사랑하는 삼삼이 엄마.. 내가 가슴으로 쓴 글이야.. 읽어봐.. 읽고 울지 말고.."
그리고 가슴으로 쓴 글을 다 읽은 와이프에게 등짝이 아닌 명치를 맞았다. 매번 등짝만 맞다가 명치를 맞으니 신선했다.
왘ㅋㅋㅋㅋㅋ필력 좋으시네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찰진 필력덕에 금방 읽었슴미닼ㅋㅋㅋㅋ한동안은 아내분의 머릿속에서 첫사랑이 떠나질 않을거같ㄴ네여..뜬금없는 일에도 튀어나올ㄹ수도 있어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늘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MOVE_BESTOFBEST/260997
고추잡채나 처먹을것이지에서 빠앙ㅋㅋㅋㅋ